<**트리카 생존편 - 9>
“아삼아 이리와봐~”
『Eins31이다,』
이젠 익숙한 말꼬리 늘이기로 대화를 이어가던 에리와 Eins31은 건물 옥상에 꾸며진 화단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밖은 한참 비가 추적추적 떨어져 흐렸지만 비옷을 입은 에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옥상에서 놀고 있었다.
아파트 옥상이라 공간도 나름 넓었고 그동안 화단형식으로 주변을 꾸미기도 해서 옥상에 풍경은 엉성하긴 했지만 작은 공원이라 불러도 손색 없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혹시 붕괴능에 의해 식물이 괴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 준이 팬스를 둘러 화단을 둘러싸 놨지만 미관을 그렇게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Eins31이 이 사실을 들었으면 쓸데없는 걱정이라 단호하게 말하며 철거했겠지만 애석하게도Eins31이 이 사실을 알 턱이 없으니 무심하게 넘어가는 중이었다.
『겨우 비내리는 정도로 작업을 중지하다니. 너희들은 탈출할 생각은 있는거야?』
“오빠가 괜히 무리하다가 감기걸리면 더 큰일이니 오늘은 쉰다고 했어.”
『성흔의 힘을 가진 녀석들이 감기라... 우리 연구진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헛웃음 나오겠어.』
Eins31 말대로 그들은 이미 천명의 발키리 급의 신체를 가졌다 봐도 무방했다. 훈련이 안되서 그런 거지 발키리들은 이들처럼 초능력조차 못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조금만 다져져도 얼마나 굉장한 전력이 될까. 전술로봇이었던 Eins31에겐 아까운 자원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 탑재된 윤리 프로세서에서 그들을 전략병기로 강요해선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기 이에 대한 언급은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는 일이 이 꼬맹이와 시간 보내기라는 것은 아무래도 아깝다 생각해 바깥으로 내뱉고 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너는 준과 어떻게 합류한 거지? 금발 여자애 말로는 네가 가장먼저 그와 합류했다던데.”
“응? 에리 말하는 거야?”
자신을 가리키는 에리에게 Eins31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인적조사라도 하며 이들의 능력발현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있지만 아무리 조사해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트, 페트, 메리 세명은 공통적으로 이곳에서 붕괴수와 망자들을 피해 도망치다 만나게 되었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발현된 능력을 이용했을 뿐.
담백하면서도 너무나 우연적인 이야기였다. 붕괴에서 살아남는 것도 흔치 않는 일이지만 거기에 초능력까지 얻은 이 현상이 단순한 우연이기엔 천문학적인 확률의 영역이었다.
차라리 이들이 모두 율자였다 – 같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 더 납들 될 정도였다.
그래서 Eins31은 마지막 에리에게 이야기를 들어 현 상황을 마저 분석하려는 것 이다. 물론 상대는 어린 인간이니 별 기대는 안하고 있다.
그래서 먼 경치를 바라보며 Eins31은 가볍게 에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에리는 '그 폭발'이 있고 나서 괴물이랑 귀신한테 도망치고 있었어. 근데 괴물이랑 귀신이 너무 빨라서 에리가 도망쳐도 금방 따라왔어.”
어른의 달리기로도 망자와 붕괴수에게 도망치는 건 불가능 했다. 신체구조가 붕괴의 힘을 얻고 더욱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에리가 그들에게 도망쳤다는 건 객관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었다.
“그때 귀신이 긴 손톱으로 에리를 활켰어. 너무 아파서 울었는데 그래도 귀신은 에리한테 무섭게 다가오는 거야. 근데 그때 에리는 친구한테 도움을 받았어.”
『그때 준과 만난 거군.』
“아니.”
『?』
“친구인 호미였어.”
『???』
한편 준은 아파트 내부 어느 방 소파에 누워있었다. 바깥에 나가기는 위험하고 그렇다고 딱히 취미같은게 없으니 멍때리는 것 이다.
아트는 마트에서 주운 게임기를 하러 갔고 페드는 운동하다가 지금 낮잠으로 골아떨어진 상태. 아마 저렇게 낮잠을 자면 밤에 잠이 안와 고생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페드를 몰라서 하는 말 이다.
잘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잘 수 있는 자연 친화력 만렙 페드는 하루 23시간 숙면도 가능한 초인이었기에 아무도 말리지 않는 것 이다. 이 중 가장 건강한 것은 그 때문인 것인가 생각해본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냥 선천적 재능으로 밖에 안 보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 메리는 지금 바로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취미가 그림이라 상당히 소녀틱 한 것 같지만 그녀의 꿈이 생물학자였던 만큼 그림들은 동물이나 같은 것들의 극사실화 풍이 대다수였다.
물론 실력은 뛰어났지만 그림이 상상력 하나 가미되지 않는 동물들이다 보니 에리를 제외하면 다들 흥미가 떨어져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동물이 아니야?”
“왜?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아니, 너무 생뚱맞은 게 나와서.”
지금 캠퍼스에 그려진 것은 평소와 달리 극장, 그것도 뭔가 삐뚤빼뚤한 극장이었다. 자신의 배배꼬인 심정을 나타내는 것인지 영문을 모를 그 그림에 준이 의아함을 느낀 것 이다.
“나도 가끔 다른거 그리고 싶을때가 있는 거뿐이야.”
“비가 와서 감상적이게 된 거야?”
“글세,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러면서 그리는 그녀의 그림이 묘하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흔한 오케스트라 같은 구조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가기도 한 묘한 기시감이 들 정도였다.
“TV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 중계탑 다시 세우려다가 난 건 기억 안 나나봐?”
“그땐 큰일이었지. 설마 한쪽다리가 부러졌을 줄은 상상도 못하고 올라가다가 무너져 내렸으니까.”
“뒤이어서 붕괴수랑 망자들이 모여들어서 큰일난 줄 알았다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들 용케 살아있네.”
그 외에도 발전소 잘못켜서 폭발했던 일이나 아지트를 찾다가 망자들이 모여있는 벌집을 쑤신 일이거나 하나하나 이야기해도 하루종일 대화할 수 있는 스토리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면 무모하고 아찔한 이야기들이었다. 어쩌면 이들이 조금 더 생각이 깊고 어른이었다면 지금쯤 진작 탈출 하고 사람처럼 살아갔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어.”
“응.”
잠시 바깥에 비가내리는 소리만 울리는 정적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고요한 정적과 메리의 붓이 캠퍼스를 문지르는 소리만 들리자 준의 눈꺼플도 슬슬 떨어지려고 했다.
백색 소음들이 어우러지며 정신이 흐려질 때 무언가가 자기 품속에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뭐하냐.”
“너까지 자면 난 뭐하라고.”
“계속 그림 그리면 되잖아.”
“그래도 혼자 그리면 지루하단 말이야.”
“너가 에리냐.”
그러고 애써 돌아 누으려고 할 때 이번엔 복부 아래쪽에 무언가가 얹는 느낌이 들었다. 준은 아찔한 자극에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 보고 나서야 메리가 자신 위로 올라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 뭘....”
“아무도 없는데... 할까?”
“네..? 뭐, 네?”
갑작스런 태도에 준이 말을 어버버 떨었지만 몸을 굽히며 다가오는 메리에 준의 사고가 더더욱 마비가 걸려오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게 더 스릴있잖아?”
“아니, 네? 무슨? 저, 저기 잠시만-”
하지만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멈추지 않고 그와 가까워 지며 그녀의 붉은 입술이 다가오고 있었다.
준도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마법에 걸린듯 고개를 들어 올려 천천히 그녀를 마주보고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등허리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아 받아들이려는 순간 가슴이 점점 답답해지고 마음이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흡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일어나 보라고 좀!!』
“컥!”
턱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눈앞에 있던 공간이 풍선처럼 터져 별과같이 흩날려 버렸다.
띵한 머리와 얼얼한 턱을 부여잡고 고통에 호소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원인인 고철덩어리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그를 나무랐다.
『대체 낮잠을 얼마나 깊게 자길래 불러도 대답이 없어?』
“아, 뭐... 음, 어.”
갑작스레 Eins31이 나타난것도 있지만 꿈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부끄러움 반 당황이 반으로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준이 슬쩍 거실을 보자 다행스럽게도 메리는 잠시 자리를 비운 건지 파레트만 의자에 내려놓아 져 있었다.
이어 눈에 들어오는 열린 창문으로 보아 그쪽으로 Eins31이 들어온 듯 했다.
“그럼 뭐야. 나 좀 더 자게 내버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띨빡아!』
다시한번 Eins31이 준의 머리 위로 몸을 부딪치자 준이 고통에 머리를 감싸 안으며 바닥을 굴렀다.
『너. 그 꼬맹이가 말하는 인형 정말이야?』
“으....뭐가?”
준이 얼굴을 찌푸리며 신경질 적으로 Eins31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그의 행동에 안중에도 없듯 질문을 계속 했다.
『사람을 인형으로 만든다는 거. 에리의 능력이 이게 맞는지 확실하냐는 거야!』

후기)요즘 맨날 C언어해서 그런지 한국 문법이 점점 퇴보하는 기분이 듭니다...


